잔디보호매트 위에서 하염없이 대기하다가 돌아왔다

잔디보호매트 위에서 하염없이 대기하다가 돌아왔다

부모님 등쌀에 못 이겨 따라간 낙동강변의 주말

지난달 주말에 본가에 내려갔다가 거의 반강제로 부모님 손에 이끌려 야외로 나갔다. 요즘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서 이게 대세라며 한 번만 같이 가자고 하도 성화이셔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이 구미파크골프장인데, 낙동강 체육공원 옆에 넓게 펼쳐져 있었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입구부터 차들이 꽉 차 있었고, 주차 공간을 찾아서 뺑뺑 도는 데만 20분 넘게 걸린 것 같다. 솔직히 이때부터 그냥 집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대구 군위나 이 근처 경북 지역에 이런 구장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뉴스는 얼핏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와보니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대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은퇴하신 어르신들이었고, 나처럼 젊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아 입구에서부터 묘하게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골프채 하나 가격을 듣고 굳어버린 지갑

채가 없어서 입구 쪽 대여소에서 빌리려고 물어보니 하루 대여료는 5,000원 정도였다. 대여료는 생각보다 싸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부모님이 옆에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제대로 하려면 장비를 사야 한다며 니탁스파크골프채나 판테온파크골프채 같은 브랜드를 언급하시는데 가격대가 보통 80만 원에서 비싼 건 15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하더라. GTR파크골프 같은 국내 브랜드도 쓸만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몇십만 원은 기본으로 깨진다고 했다. 일반 골프채 세트 가격을 생각하면 단품 하나에 그 정도 돈을 태우는 게 맞나 싶어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취미로 하는 생활체육 치고는 진입장벽이 장비 가격에서부터 꽤 높게 느껴졌다. 대여용 채는 손잡이 고무도 많이 닳아 있고 묘하게 손때가 타 있어서 잡을 때 찝찝했는데, 그래도 하루 치기엔 나쁘지 않았다.

잔디보호매트 위에서 보낸 하염없는 대기 시간

파크골프는 일반 골프랑 다르게 코스가 짧아서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첫 홀 티박스에 올라서기도 전에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티박스 바닥에 깔린 초록색 잔디보호매트 위에 서서 앞 팀이 나가는 걸 하염없이 기다렸다. 바람은 불고 흙먼지는 날리는데 한 40분은 그냥 멍하니 서 있었던 것 같다. 구장 관리를 위해 매트를 깔아둔 건 이해하겠는데, 그 매트 위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 시간 자체가 너무 곤욕이었다. 부모님은 아는 동네 분들을 만나서 인사하느라 바쁘셨고, 나는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언제 시작하나 시계만 들여다봤다. 경기 진행 속도도 어르신들의 걸음걸이에 맞춰지다 보니 생각보다 아주 느긋하게 흘러갔다.

알아듣기 힘든 용어와 미묘한 신경전

겨우 차례가 와서 공을 치기 시작했는데, 일반 골프 용어랑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부분들이 헷갈렸다. 오비(OB)가 나면 벌타를 주는 방식이나, 벙커에서 탈출할 때의 규칙 같은 것들이 묘하게 깐깐했다. 특히 파크골프협회 규정집이라도 외우고 다니시는 건지, 옆 조에서 플레이하던 어르신 한 분이 우리가 공을 치는 모습을 보며 룰이 틀렸다고 넌지시 훈수를 두시는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파크골프용어들을 섞어가며 지적하시는데, 귀찮아서 그냥 대충 네네 하고 넘어갔다. 생활체육이라서 가볍게 치는 친목 도모용 운동인 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느껴지는 눈치 싸움과 미묘한 기싸움은 프로 대회 못지않게 살벌했다.

차라리 카카오프렌즈스크린으로 갈 걸 그랬나

겨우 18홀을 다 돌고 나니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었고 다리도 뻐근했다. 대기 시간까지 합쳐서 거의 3시간 넘게 밖에서 찬 바람을 맞았더니 뜨거운 국물이 간절하게 생각났다. 문득 이 돈과 시간이면 차라리 따뜻한 실내에서 카카오프렌즈스크린 같은 데 가거나 그냥 일반 스크린 골프연습장에서 한 게임 치는 게 몸은 훨씬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거기는 음료수도 주고 에어컨이나 히터도 빵빵하게 나오는데, 굳이 이 흙먼지 날리는 야외 구장까지 와서 눈치 보며 쳐야 했나 싶었다. 부모님은 공기가 좋아서 건강해지는 기분이라고 대만족하셨지만, 나에게는 그저 피곤함만 남는 주말 하루였다.

트렁크에 방치된 채를 보며 생기는 고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이 다음 주말에도 또 내려와서 치자며 내 몫으로 저렴한 연습용 채를 하나 사주셨다. 인터넷으로 대충 10만 원 안팎 하는 이월 상품을 골라 주셨는데, 지금 그 채는 내 차 트렁크 구석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한번 쳐보긴 했으니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겠는데, 솔직히 내 자발적인 의지로 다시 그 구장을 찾아갈지는 잘 모르겠다. 어르신들의 열정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한 탓인지, 아니면 그냥 내 성향에 안 맞았던 건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산뜻한 레저스포츠라기보다는 뭔가 잘 짜여진 경로당 행사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채를 당근마켓에 팔아버려야 할지, 아니면 그래도 부모님과의 소통을 위해 남겨둬야 할지 결정을 못 내리겠다.

댓글 4
  • 카카오프렌즈스크린 생각했으면 좋았을 텐데. 특히 그 흙먼지 때문에 좀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 매트 위에서 기다리는 시간, 정말 낭비 같았어요. 특히 바람 때문에 공이 날아갈까 봐 더 신경 쓰이더라구요.

  • 매트 위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어색하네요. 특히 부모님과 다른 분들의 훈수질이 섞이면 더욱 곤욕스러울 것 같아요.

  • 파크골프장 주차 때문에 뺑뺑 돌다가 20분 넘게 걸린다는 게 정말 공감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복잡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