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한복판에서 퇴근길 골프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이유

종로 한복판에서 퇴근길 골프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이유

점심시간을 쪼개서 골프를 시작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지하철 1호선 라인인 종로 쪽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고민했던 건 퇴근 후에 뭘 할까였다. 예전에는 그냥 헬스장을 다녔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골프 연습장이 은근히 많아서 고민하다가, 결국 직장인들이 제일 많이 다닌다는 GDR 아카데미가 포함된 곳들을 리스트업 했다. 솔직히 말하면 골프를 잘 치고 싶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그냥 종로 빌딩 숲에서 찌들어 있다가 시원하게 공 한번 치고 나면 스트레스가 좀 풀리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기대였다. 처음 상담을 갔을 때는 정말 활기찼다. 상담해주시는 분이 지금 이벤트 기간이라며 비용을 설명해주는데, 한 달에 15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면 충분히 다니겠구나 싶었다. 물론 레슨비를 따로 계산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일단 등록부터 해두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예약 전쟁과 예상치 못한 대기 시간

막상 등록하고 나니 가장 큰 문제는 자리 확보였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직후인 저녁 6시 30분에서 8시 사이는 소위 말하는 ‘황금 시간대’다. 앱으로 미리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5분만 늦게 들어가도 이미 전 타석이 예약 완료라는 메시지를 보게 된다. 처음에 나는 이게 그냥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싶었는데, 며칠 반복되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돈은 돈대로 내고, 정작 내가 치고 싶을 때는 자리가 없으니 허탈했다. 특히 금요일 저녁에는 아예 엄두도 못 낸다. 한 번은 퇴근하고 바로 달려갔는데도 대기 번호 10번을 받고 연습장 한구석에 앉아 있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연습하시는 분들은 이미 익숙한 듯이 태블릿을 넘기며 스윙 분석 데이터를 보고 계시는데, 나는 겨우 잡은 50분 중에 10분을 신발 갈아 신고 장갑 끼는 데 다 쓰고 있었다.

레슨은 받고 싶은데 스케줄 맞추기가 정말 어렵다

초보자라서 레슨이 필수인데, 이게 또 골프학원 시스템이랑 내 업무 스케줄이 잘 안 맞는다. 1:1 레슨을 예약해두고 갑자기 야근이 생겨서 취소해야 할 때마다 어찌나 미안하고 또 아까운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 미리 취소하면 괜찮지만, 당일 취소는 아예 횟수가 차감되어 버린다. 한 번은 급한 보고서를 쓰다가 레슨 시간을 놓쳐서, 강사님께 너무 죄송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강사님은 괜찮다고 하시지만, 내 돈 5만 원 정도가 공중으로 사라진 기분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레슨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조급하다. 옆 타석에 계신 분은 벌써 드라이버를 시원하게 날리는데, 나는 아직도 7번 아이언으로 똑딱거리고 있으니 비교가 안 될 수가 없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위축되는 기분이다.

장비 욕심은 끝이 없고 초보는 오늘도 헛스윙을 한다

처음에는 연습장에 있는 공용 채로 대충 시작하면 될 줄 알았다. 근데 막상 해보니 사람마다 키도 다르고 힘도 다른데 공용 채만 계속 쓰려니 뭔가 폼이 안 나는 것 같았다. 결국 중고 장터에서 30만 원 정도 하는 입문용 세트를 하나 샀다. 집에 가져와 보니 생각보다 부피가 커서 둘 곳이 마땅치 않다. 베란다 한구석에 세워뒀는데, 볼 때마다 뭔가 숙제 같은 느낌이 든다. 어제는 연습장에 가지고 갔는데, 옆에 계신 분들이 내 채를 슥 보시는 것 같아서 괜히 뻘쭘했다. 요즘은 하이엔드 아파트 커뮤니티에 AI 웰니스 로봇이나 스크린 골프 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뉴스를 본다. 종로 일대에도 그런 고급 시설들이 많아지던데, 나는 그냥 낡은 연습장 타석에서 땀 뻘뻘 흘리며 오늘도 공을 헛치고 있다. 장비가 좋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좋은 채를 쓰면 좀 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앞으로 계속 다닐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결국 골프라는 게 나랑 잘 맞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연습장 안에서 땀을 쫙 빼고 나면 개운하긴 한데,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피곤함이 몰려오면 ‘내일은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다음 달 등록 기간이 다가오는데, 또다시 3개월 치를 끊어야 할지 아니면 한 달씩 연장할지 고민이다. 같이 시작했던 친구는 벌써 필드 나갈 준비를 한다는데, 나는 아직 공 맞히는 것도 급급하다. 사실 골프가 재미있어서라기보다, 다들 하니까, 그리고 안 하면 정말 운동을 하나도 안 할 것 같아서 억지로 발을 들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 예약해 둔 시간은 7시니까, 또 짐을 챙겨서 연습장으로 가야 한다. 가서 또 7번 아이언만 휘두르다가 오겠지.

댓글 4
  • 인내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는 게 정말 중요하겠네요. 저도 처음 시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억지로 하는 느낌이 들면 잠시 쉬면서 방향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3개월 치 끊고 한 달 연장 고민하는 거 완전 공감해요. 저도 비슷한데, 결국 다시 끊고 그냥 걷기 시작했어요.

  • 7번 아이언으로 계속 쳐서 답답하네요. 저도 처음에 비슷한 경험 때문에 좀 좌절했었어요.

  • 글 읽어보니 골프장 예약 전쟁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날은 연습조차 하기 싫더라고요.